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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창환] 굴비/조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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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12회 작성일 2025-04-11 07:38:3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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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비/조창환

굴비가 아련한 것은 기억 때문일까, 미각 때문일까

굴비 한 두름 노끈에 꿰어
의기양양하게 골목길 들어서시던 아버지, 아버지 냄새
굴비 구워 두레반상에 올리고
가시 발라 숟가락에 얹어 주시던 어머니, 어머니 냄새
굴비포 껍질 벗겨 찹쌀고추장 항아리에 층층이 박아 넣고
궂은날 옹기단지 들여다보시던 할머니, 할머니 냄새

굴비 한 마리에 짭짤한 법성포 바닷바람 묻어 있고
굴비 두 마리에 출렁이는 추자도 파도소리 스며 있고
굴비 세 마리에 쨍쨍한 연평도 여름햇볕 녹아 있다

씹을수록 진득한 굴비 한 조각
감칠맛도 아니고 짠맛도 아니고 매운맛도 아닌
그 맛, 당길 맛
중국 맛도 아니고 일본 맛도 아니고 서양 맛은 더욱 아닌
그 맛, 조선 맛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군침 돌아 입맛 다시던 그 맛, 당길 맛

굴비가 아련한 것은 그 맛, 당길 맛 때문이다

- 『벚나무 아래, 키스자국』(서정시학,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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