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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옥관] 모시나비의 꿈/장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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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4회 작성일 2025-05-02 13:39:0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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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나비의 꿈/장옥관

노오란 장다리꽃 위에 나비 한 마리가 내려와 앉습니다 물로 씻어 놓은 것처럼 참 고요한 풍경입니다 골목 안 선산쌀집 아줌마가 뿌려놓은 무씨가 저 혼자 꽃을 피웠군요
쌀집 아줌마를 보니 모시나비가 생각납니다 모시나비는 단 한 차례의 짝짓기로 생식기를 봉쇄당한다 하지요 수컷의 끈적끈적한 점액질로 봉인된 암컷 모시나비의 성기
서른 중반에 혼자가 된 포목점 처형은 모시옷을 즐겨 입었습니다 세모시 적삼에 피어오른 얼굴은 연둣빛 머금은 수국꽃 그때 초등학교 아이들이 출가를 해서 다시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 세월이 삼십여 년입니다
나비 날개 반투명의 수줍음처럼 고요하게 닫은 삶입니다 그 고요함의 화로에 담긴 숯불을 짐작하지 못한 바는 아닙니다만 서른하나에 혼자가 된 어머니가 시집가는 꿈에 시달렸던 어린 시절이 겹쳐 있었겠지요
며칠 전 쌀집 대문에 걸려 있던 근조등처럼 노오란 장다리꽃들이 대낮에 등불을 켜고 있습니다 꽃송이 위에서 무슨 낮꿈을 꾸고 있는가, 나비는 도무지 자리를 뜨려 하지 않습니다

- ​『하늘 우물』(도서출판 세계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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