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못의 독서-길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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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의 독서
길상호
그날도 날아든 낙엽을 펼쳐들고
연못은 독서에 빠져 있었다
잎맥 사이 남은 색색의 말들을 녹여
깨끗이 읽어내는 것이야말로
초겨울 가장 서둘러야 할 작업이라는 듯
한시도 다른 데 눈을 돌리지 않았다
침묵만 남아 무거워진 낙엽을
한 장씩 진흙 바닥에 가라앉히면서
물살은 중얼중얼 페이지를 넘겼다
물속에는 이미 검은 표지로 덮어놓은
책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연못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오래 그 옆을 지키고 앉아 있어도
이야기의 맥락은 짚어낼 수 없었다
저녁이 되어서야 나는 그림자를 뜯어
수면 아래 가만 내려놓고서
비밀처럼 깊어진 연못을 빠져나왔다
그날 읽을 것도 없는 나를 넘기다 말다
바람이 조금 더 사나워졌다
길상호
그날도 날아든 낙엽을 펼쳐들고
연못은 독서에 빠져 있었다
잎맥 사이 남은 색색의 말들을 녹여
깨끗이 읽어내는 것이야말로
초겨울 가장 서둘러야 할 작업이라는 듯
한시도 다른 데 눈을 돌리지 않았다
침묵만 남아 무거워진 낙엽을
한 장씩 진흙 바닥에 가라앉히면서
물살은 중얼중얼 페이지를 넘겼다
물속에는 이미 검은 표지로 덮어놓은
책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연못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오래 그 옆을 지키고 앉아 있어도
이야기의 맥락은 짚어낼 수 없었다
저녁이 되어서야 나는 그림자를 뜯어
수면 아래 가만 내려놓고서
비밀처럼 깊어진 연못을 빠져나왔다
그날 읽을 것도 없는 나를 넘기다 말다
바람이 조금 더 사나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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