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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현대문학〉 신인추천 시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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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726회 작성일 2021-10-14 23:30:5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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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현대문학〉 신인추천 시 당선작

창가에서
          김지민

  이듬해 우리는 일본에 갔다. 숙소에 짐을 풀며 이제 다 잊자. 우리 중 누군가 말했고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우리는 창가에 모여 바깥을 내다보았다. 눈 쌓인 땅 위를 클립만한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었다. 그 사이로 허둥지둥 눈밭을 뛰어가는 뒷모습이 보였다. 말없이 보고 있었는데, 누가 떠민 것처럼 그가 앞으로 푹 쓰러졌다. 쓰러진 자세 그대로 한동안 가만있었다. 다들 와르르 웃었다. 그럴 리 없는데, 그가 고개를 돌려 이쪽을 보았다. 웃음이 뚝 그쳤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눈을 툭툭 털었다. 몸을 돌려 우리가 서 있는 창가를 올려봤다. 우리는 빠르게 흩어졌다. 오직 한 녀석만이 창가 아래 몸을 숨긴 채 바깥을 엿보고 있었다. 야, 그만 봐. 찾아오면 어떡해. 녀석은 말이 없었다. 녀석의 뒤통수가 묘해질 즈음 온다, 온다, 온다! 녀석이 소리쳤다. 우리는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녀석은 우리의 안색을 살피며 슬며시 장난이라고, 그는 이미 한참 전에 자리를 떴다고 중얼거렸다.

  우리는 다닥다닥 붙어 잤다. 이불을 턱밑까지 끌어 올리고 천장을 바로 보았다. 어디선가 찬바람이 들었다. 내일부터 정신없이 바쁠 거야. 금각사도 청수사도 봐야 하고 기모노도 입어야 해. 참치덮밥도 그래, 맛있는 것도 잔뜩 먹고 사진도 많이 찍자. 창가에서 마지막까지 밖을 엿보던 녀석은 혼자 말이 없었다. 우리는 한 번씩 녀석을 바라보았다. 녀석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러나 하나둘 조용히 눈을 감고, 홀로 깨어 있지 않기 위해 억지로 눈을 감고……

  밤새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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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교전
          김지민

  고구마를 크게 한 입 베어 문다

  화면 속에 건물 잔해가 나뒹군다 연기가 피어오르고 부리나케 도망가는 사람들이 있다 미처 피하지 못해 연기 속에 파묻힌 사람들이 있다 들것에 실려 화면 밖으로 벗어나는 사람들이 있다 붉은 모자이크를 덮고 일렬로 누운 사람들이 있다 새까만 발바닥과 발바닥

  입안에서 고구마가 굴러다닌다

  당장의 고구마 나에게 닥친 고구마 입안에서 벌어지는 고구마 뱉지도 삼키지도 못하게 달려드는 고구마 어찌할 도리 없이 달고 뜨거운 고구마 정말 큰일이야 어쩌면 좋아 나는 고구마를 피해 달아나다가 고구마를 살살 달래보다가 고구마를 이로 잘게 부수면

  불타는 시가지를 바라보던 남자가 이쪽을 돌아보며 손을 뻗는다 잡아달라는 듯이
  잡아보라는 듯이

  화면은 좌우로 흔들리다 끝이 난다 입안에서 부드럽게 으깨지는 노란 속살 서서히 녹아 사라진다 멀어지는 총성처럼 교전 영상 속에 살던 사람들처럼 고구마가 사라지고 난 뒤에도 입안에 감도는 희미한 단맛, 교전보다 오래 지속되고
  입안이 얼얼하다

  입 사이로 연기가 풀풀 피어오른다 나는 평생 전운을 느껴본 적 없고 달다 혼자 중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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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향

  퇴직 후 아버지는 숲 해설가가 되었다 주말이면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집 뒤편의 야산에 올랐다

  야야 솔방울은 씨앗이 하나라도 남아 있으면 절대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너도 얼른 시집을 가 아이를 낳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겠느냐

  나는 콱 불을 지르고 싶었다

  젊은 애가 왜 허구한 날 방에만 누워 있느냐 아버지는 내 얼굴을 물끄러미 굽어보다 솔방울 같은 말을 툭 떨구었다

  아버지 나는요 내가 도무지 젊은 것 같지가 않아요 내게 남은 날들이 궁금하지 않아요 어쩌면 나는 이미 오래전에 내 몫의 씨앗을 다 털어낸 게 아닐까요

  천둥이 치자 아버지와 나는 앞 다투어 산에 올랐다 빗방울이 툭 떨어졌다 숲의 심지가 젖어들었다

  숲에 관해서라면 아버지는 누구보다 많은 것을 알았다 나무의 잎사귀가 저마다 모양이 다른 이유 소나무 가지에 둥지와도 같은 커다란 혹이 맺히는 이유 그러나 사람이 기꺼이 낭떠러지 아래로 뛰어드는 이유에 대해선 조금도 아는 바가 없었다

  야야 그거 아느냐 나무도 번개를 맞으면 결국 시름시름 앓다 죽는다는 거

  바닥이 가까워질 때마다
  나는 사는 것이 시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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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룩시장

  벼룩시장에 왔는데, 벼룩시장은 벼룩 같은 것들을, 나를 좀먹는 것들을 팔러 나오는 곳으로 알고, J의 물건과 같은 것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왔는데

  사람들이 멋진 걸 판다 진짜 상인처럼 빛나는 것들을, 벼룩시장이 아니라 시장에 있을 법한 것들을 늘어놓고

  여기 오세요, 이것 좀 보세요, 내일은 없어요, 일어나 소리치는 것이다 벼룩시장은 벼룩 같은 것들을 쌓아두고, 벼룩처럼 앉아 시간이나 좀먹는 곳으로 알고 왔는데

  옆자리 여자는 직접 만든 라탄 바구니를 앞에 쌓아두고, 실시간으로 바쁘게 손 움직이며 라탄 바구니를 늘리고 있다 완성하면 앞에 툭 쌓고, 툭 쌓고, 툭툭 쌓고, 그렇게 오전을 흘려보내고 있다

  나는 더 이상 입지 않는 옷들이며 기념으로 사 온 싸구려 공예품이며 J의 냄새가 남아 있는 물건들을 쌓아두고, 나를 그 사이에 파묻어두고 하릴없이 앉아 있는데, 실은 팔리고 싶은 것처럼 숨죽이며 발가락 꼼질거리고 있는데

  내 앞으로 사람들이 휙휙 지나간다 부채질하며 깔깔거리며 나의 해묵은 물건들을 따돌리며 어디론가 나아간다 다들 거대해서 그늘져 보이는데, 나는 그냥 가만히 앉아 시간이나 좀먹고 있다 누군가 나를 이곳에 벌여놓고 식사하러 간 것처럼

  팔리지 않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발목 하나가 우뚝 멈춰 선다 J의 스웨터를 집으며 이거 얼마예요? 묻는다 옆자리 여자도 손을 멈추고 나를 본다

  나는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른다 그가 J의 스웨터를 툭 놓고 사라진다 J의 스웨터가 내게 툭 돌아온다 옆자리 여자도 다시 손을 움직인다 발목들도 다시 지나간다

  벼룩시장은 점점 더 활기를 띠고 날은 어두워지고 옆자리 여자는 라탄 바구니와 함께 쌓여 있다 나는 팔 생각도 없이 팔러 나와 팔리지 않는 물건들과 실은 팔리고 싶은 얼굴로 앉아 있다 열 발가락 꼼지락거리며

  무슨 생각 같은 것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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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사평 | 소박하지만 단단한 시세계 _이기성

  질병으로 인한 공포와 불안이 세계를 잠식하는 동안 많은 분들이 보내온 응모작들을 읽었다. 작품마다 배어 있는 시에 대한 열망과 치열한 노력들이 느껴지기에 어느 한 작품도 쉬이 넘길 수 없었다. 문득 감염과 죽음의 공포를 넘어서게 하는 것은 새로운 세계를 향한 문학적 열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의 응모작들의 특징은 시적 스펙트럼이 무척 넓고 다양하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의미의 서정시에서부터 모험과 도전 의식 가득한 실험적인 작품까지, 자기 고백적 시편들에서 내밀한 사색과 사유를 담은 시들까지. 시적 음역의 다양함은 시 쓰는 사람들의 관심과 취향의 다채로움을 짐작하게 해주었다. 아쉬운 점은 대부분의 작품이 자신들이 선택한 시적 경향에 지나치게 충실하다는 점이었다. 전통적인 서정의 기율에 충실한 시들은 선배 시인들이 일구어놓은 시적 호흡을 답습한 듯한 작품이 많았고,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시편들에서는 새로움에 대한 자의식이 앞서서 난해한 이미지들이 넘치고 있었다. 신진 시인에 대한 기대는 개성적이고 고유한 언어의 출현에 대한 기대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관습적인 미학의 지평을 깨뜨리고자 하는 열정, 그리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새로운 세계의 출현을 목도하게 만드는 시편들을 찾아내는 일은 설레고도 힘겨운 일이다. 올해 응모작 중에서 심사자의 눈길을 붙드는 작품을 여럿 만날 수 있어서 즐거운 고민의 시간이 길었다.

  많은 작품 중에서 개성적 목소리를 보여준 강우근의 「우리의 바보 같은 마음들」 외 9편이 눈길을 끌었다. 시 「투명한 병」 「단순하지 않은 마음」 등에 출현하는 이미지들이 신선하고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시의 호흡이 길고 시상이 분산되어 전체적으로 긴장이 떨어지는 점이 아쉬웠다. 자신이 가진 화려한 기교와 솜씨를 다 드러내기보다 절제하고 한 템포 쉬어가는 기술이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석조원의 「감상」 외 9편은 시적 긴장을 유지하고 전체적인 분위기를 조율하는 능력이 느껴지는 시편들이었다. 응모한 여러 편의 시가 고르게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장점이 돋보였다. 「무덤 옮기기」 「믿음」 등은 시상의 전개에 무리가 없고, 언어를 낭비하지 않는 절제가 느껴지는 완숙한 시편들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자신이 도달한 현재의 수준을 깨뜨리고 나가려는 도발적인 의지나 패기가 느껴지지 않는 점이 아쉬웠다. 안정된 톤이 주는 무난함에 머무르지 말고 새로운 음역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마지막까지 심사자들의 손에 남아 있었던 작품은 구현경과 김지민의 작품이었다. 구현경의 「정오에 자오선을 생각한다」 외 9편은 시적 호흡을 조절하면서 밀도 있는 정서를 조직해내는 능력을 짐작하게 해주었다. 「눈사람」은 개성적 언어와 활달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정오에 자오선을 생각한다」는 상실과 애도의 정서를 다루되 감상에 빠지지 않고 정서를 잘 조율한 작품이다. 놓치기 아까운 작품이어서 심사자들의 고민이 깊었다. 그러나 함께 투고한 다른 시편들에서 보이는, 시적 대상에 대한 지나친 몰입과 감정 노출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또한 다채로운 상상력에 비해 시의 제목이 다소 평이한 점도 전체적으로 작품의 긴장을 이완시키고, 매력을 감소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되었다. 이 예비 시인이 가지고 있는 시적 가능성이 더 꽃피기를 기대하면서 다음을 기약하기로 한다.

  김지민의 「창가에서」 외 9편은 단정한 진술의 언어에 시인의 개성적인 목소리를 담아낸 작품이다. 절제된 정서와 그것을 떠받치는 안정된 진술 속에는 현실의 폐부를 찌르는 도발적인 매력이 내장되어 있다. 「창가에서」는 자아를 둘러싼 세계가 찢겨나가는 순간을 포착하는 능력이 돋보인다. 「머나먼 교전」 「전향」 등의 시편에서 보이는, 독자의 마음을 서늘하게 휘어잡는 호소력 역시 시인의 예리한 시선에서 비롯된 것이다. 최근의 시적 경향이라 할 수 있는, 언어의 속도감이나 현란한 비유의 기술에서 비켜선 채 소박하지만 단단한 시세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이 그의 작품에 더 기대를 걸게 만들었다. 당선을 축하드리며, 앞으로 멋진 시세계를 펼쳐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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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사평 | 마스크를 쓴 봄의 언어 _이근화

  미래를 살고 있는 기분으로 2020년의 봄을 맞이하였다. 창밖으로 봄바람에 꽃잎이 흩날리는데 그건 마치 ‘너 인간의 봄은 아니지’라고 말하는 것 같다. 마음은 아직도 겨울 어디쯤을 헤매고 있는 것일까.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유행으로 일상생활의 모습이 바뀌었고 앞으로 더 많이 변화된 사회에 살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변형된 바이러스 공격이 계속될 것이라는 불안감을 떨치기 어렵다. 세계 경제의 붕괴와 그에 따라 속출하게 될 사회문제들에 대한 진단이 앞다투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더 자주, 더 오래, 더 많이 인간 아닌 것과 대면하는 시간들을 인간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문학은 어디쯤 어떻게 자리를 잡고 목소리를 내야 할까.

  300여 분들이 마스크를 쓰고 우체국에 가서 손 소독제를 발라가며 작품을 보냈을 것이다. 그렇게 송부된 작품들을 읽는 나의 태도도 좀 달라져야 할 것 같아서 어리둥절 꽤 오랜 시간을 헤매었다. 개별적인 경험이 공통의 감각을 건드릴 때마다 움찔거렸다. 상실과 고통에 대한 애도의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많은 작품들에 죽음의 그늘이 깊게 드리워져 있었다. 이 우울한 상황과 국면을 한 방에 날려줄 재밌고 가뿐한 시는 없나 기대도 하였다. 그러나 ‘새로운’ 시가 되려고 안간힘을 쓰는 시보다 장르에 무관심해 보이는 ‘자유로운’ 시가 더 눈에 띄었다. 시인 되기의 의지를 드러낸 시보다 낯선 존재와 국면에 대한 호기심에서 촉발된 발화와 멈 출 수 없는 관심으로 충만한 시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윤다혜의 「감정과 저항」 외 9편은 ‘나’를 펼쳐놓는 솜씨가 좋았다. 단순한 구도에도 불구하고 시적 진술을 흔쾌히 따라갈 수 있었던 것은 탐구심과 저항성 때문이었다. ‘나’가 죽었다고 가정하는 순간조차도 구체적인 감각의 층위에서 나의 죽음은 끈질기게 꿈틀거렸다. 돌아갈 집이 없다는 것, 우리 곁을 맴도는 죽음 같은 것이 계속 괴롭히는데도 이 예비 시인은 아름답게 쏟아지는 질문들을 받아 적을 줄 안다. 길을 잃고 헤맬 때 풍경은 살아나는 법이지만, 적의와 분노를 연민과 화해 쪽으로 이동시키는 과정을 시가 포함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염려를 전한다.

  소후에의 「구름 모자」 외 9편에서 느껴지는 힘겨움을 오래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부재를 적어내는 방식은 쉽지 않을 것이다. 상실과 고통의 자리에서 다른 사람의 손을 맞잡고 내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더 어려울 것이다. 문 앞에서, 낭떠러지에서, 복도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위태롭게 흔들거리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하루하루 눈을 떴다 감는 일이 이 세상에서는 몹시 힘든 일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말이다. 한 방향으로 내달리며 살다가는 우리 모두 충돌해버릴 것이다. 글쓰기는 잔해가 아니라 봉합이라고 믿고 싶다. 구부러진 길, 움직이는 길에 대한 상상이 우리를 멈추고 춤추게 할 것이다. 그런 호흡법을 다 같이 익혀야 할 때인 것 같다. 더 많은 가능성이 예비된 시로 읽었다.

  김지민의 「창가에서」 외 9편은 할 말은 하는 작품이다. 앞뒤로 재고 따지느라 속엣말을 감추지 않는 시다. 가리지 않아서 무분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잘 쓴 시이다. 일상적 경험을 시의 언어로 포착하는 것은 감각의 일이고, 그것을 시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은 해석 능력일 것이다. 그런데 이 시인에게는 하나가 더 있다. 그것을 곱씹어보는 고요한 시간 말이다. 묘한 반전이 마련되고, 울림이 만들어지는 지점이 바로 여기서 오는 것 같다. 너무 소소해서 처음에는 잘 보이지가 않았는데 최종 후보작으로 올라온 작품들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으면서 바로 그 지점이 끝까지 이 시인을 놓지 못하게 했다. 귀가 발달한 시로서 잘 감추어진 울음에 길을 내주고 울퉁불퉁한 틈을 만들어주는 이 신예에게 박수를 보낸다.

  시란 도대체 무엇인가. 작품 안에서 언어는 특별하게 선택되고 잘 배치되어 그럴듯해지는가. 그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분들이 그렇게 시를 잘 만들어 보내셨다. 그렇게 시를 제작할 평균적 능력이 배양되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인 것 같다. 병든 돼지를 구덩이에 파묻거나 새의 뱃속에 플라스틱 조각을 밀어 넣는 일보다 시를 쓰는 일은 훨씬 덜 파괴적이다. 지구의 인간이란 난폭하고 흉물스러운 존재인데, 자연스러운 일상어를 떠나 문학의 언어에 심취하는 시간은 뭔가 좀 특별하기는 하다. 그러나 그 특별함으로 현실과 이격된 자리를 자처해서는 안 될 것 같다. 끊임없이 자신에게만 상승감과 고양감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시는 이상하게 우리의 일상과 멀어지고, 과거를 주물럭거리며, 편향된 위안만을 생산해내고는 한다. 죽은 자들이 내뱉는 언어들은 누가 알아듣는가. 있는 듯 없고,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을 목격한 자의 눈은 어디를 향하는가. 고통에 찬 말, 아파서 터져 나오는 말들이야말로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건너가 삶의 근거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아슬아슬한 새로움을 찾아서 움직이고, 경계의 위태로움 속에서 제 입술을 내놓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어서 반갑고 고마웠다. 용기 있고 당찬 시들이 더 많이 쏟아져 나와 우리를 다른 미래로 데려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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