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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수제비 끓이는 아이 - 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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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801회 작성일 2021-11-02 11:19:1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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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수제비 끓이는 아이 - 김민정
 이미죽은내가 잠든 엄마아빠의 이부자리 속을 파고든다 이미죽은내가 엄마아빠를 국자로 떠와 차례차례 변기에 담근다 이미죽은내가 엄마아빠의 잠옷을 벗기고 속옷을 벗기고 바리깡으로 몸에 난 모든털을 깍는다 이미죽은내가 엄마아빠를 깨끗이 물에 헹구고 탈수기에 넣어 탈탈말린다 이미죽은내가 쇠도끼로 엄마아빠의 머리뼈와 종지뼈를 쳐내 그걸 고아 프림색 국물을 우려낸다 이미죽은내가 엄마아빠의 살을 조근조근 손톱깎이로 뜯어 흠을 판다 이미죽은내가 엄마아빠의 뜯긴 살집에 손을 넣어 큼직큼직하게 살점을 떼어낸다 이미죽은내가 떼어낸 살점을 조물조물 납작납작 주물러서 국솥에 떨어뜨린다 이미죽은내가 엄마아빠의 깎아놓은 털에 말간 뇌수액을 붓고 끈적끈적한 혈장을 버무려 양념장을 만든다 이미죽은내가 엄마아빠의 발라놓은 뼈에 비계칠을 하고 불을 붙여 국솥의 아궁지를 달군다 이미죽은 내가 링거바늘로 뽑아둔 엄마아빠의 피로 국물 간을 맞춘다 이미죽은내가 엄마아빠의 살수제비가 팔팔 끓고 있는 국솥 앞에서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이미죽은 내가 엄마아빠의 살수제비를 후후 불어 떠먹기 시작한다 이미죽은내가 엄마아빠의 쫀득쫀득한 살수제비를 양념장에 찍어 이 삭도록 씹어댄다 이미죽은내가 엄마아빠의 살수제비 국물을 후루룩 후루룩 솥째 마셔버린다 이미죽은 내가 솥을 내던지고 부른 배를 땅땅 두드리며 이를 쑤신다 이미죽은내가 부른 배를 안고 엄마아빠의 이부자리 속에 드러눕는다 이미죽은내가 엄마아빠의 이부자리 속에서 잠들어 꿈을 꾼다 이미죽은내가 꿈속에서 입에 뿔피리를 쑤셔넣고는 우웩우웩 토하고 있다 이미죽은나의 입 속에서 도로 뽑혀나온 살수제비들이 여기저기 깨진 조약돌처럼 뒹굴고 있다 이미죽은내가 휘리릭 휘파람을 불어 엄마아빠의 스무 손가락 스무 발가락을 불러 모은다 이미죽은나는 엄마아빠의 손가락 발가락들이 각각 제 살점들을 모아 너덕너덕 이어나가는 걸 울면서 울면서 바라본다 이미죽은 나는 엄마아빠의 되생겨나는 몸에서 얼기설기 솟아나는 털 한 올 한 올에 고무밴드를 묶어 이름을 붙여준다 이미 죽은나는 삶은 무처럼 연하고 물렁물렁해진 엄마아빠를 세발자전거에 태우고 꿈 밖으로 페달을 밝아 나간다 이미죽은내가 기다리고 섰던 내 앞에 엄마아빠를 내려놓는다 이미죽은나는 홀로 세발자전거에 올라 내 눈 속으로 달려 든다 이미죽은나를 눈알 속에 잠재우고 나는 잠든 엄마아빠를 등에 업은 채 다시 오븐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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