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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 이상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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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354회 작성일 2023-01-03 17:26:1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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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의 추억


기억의 성채도 언젠간 무너지지만 내 인생극장은 막을 내릴 수 없다네

삼팔장은 파장 흐느끼는 뽕짝 무대래야 장터 마당 우리는 들뜨지 학교에선 기죽던 강둑 아래 녀석도 나방처럼 설치지 노란 등 꺼지고 영사기 소리 밤하늘 긁으면 어김없이 죽죽 장대비 내리지 매가리 없는 삶 눈물처럼 때도 없이 내리지 사랑해선 안 될 사람 통통배는 서울로 가는데 소나무에 기대 바라만 보는 여인 아, 문 희, 눈물도 예쁜 저런 여자라면 삶이 한두 번 속여야지 그래도 지금 여자 갸름한 목덜미는 꼭 닮았다네

촌구석에 극장이라니 거무죽죽 지붕 사이 우뚝한 국제극장 김일 박치기를 단체로 볼 줄이야 허장강도 도금봉도 막걸리 안주 희갑이는 애들도 만만하게 보는데 장돌뱅이로 돌고 돈 필름은 장꾼들 셈처럼 자꾸만 끊어져 하필 두 입술이 닿을 찰나에 건달들 ‘도끼’ 고함에 다시 이어져도 꼴도 보기 싫은 놈 자르고픈 컷, 컷, 정말 도끼로 뭉툭 도려내고 사는 맛도 있어야지 ‘한 떨기 장미 꽃잎이 젖을 때’라나 아직도 콩닥거린다네

범일동 시궁창 강구 군단도 촌놈 부산 구경 못 막았지 가무잡잡 삼화고무 앳된 처자들 삼일극장이 비좁네 뽕도 딸 겸 들어서면 분내 땀내 찐득거려 삼성극장으로 건너가면 지린내가 폴폴 따라붙지 헛헛하지 액션으로 한 방 멜로로 또 한 방 동시에 달래주곤 남진까지 불러다 구장집 봉순이 봉긋한 가슴에 바람 넣더니 바람과 함께 사라진 봉순인 태화고무 고무신처럼 어디서 질기게 살아갈 테지 그 보림극장도 문을 닫았다네

내려진 그 극장 간판 헛바람 안 빠진 물컹한 가슴에나 달아야겠네




이상록_경북대 국문과 졸업, 전 혜광고 교사, 제1회 사하모래톱문학상 시 최우수상 수상.



 

 


기억 저편의 사물 포획 솜씨 돋보여

515명이 투고한 2140편의 작품을 읽으며 심사위원들은 자기표현으로서의 시가 인간학적인 장르라는 사실을 다시 인식하였다. 20대에서 80대에 이르도록 매우 다양한 삶에 처한 이들이 다채로운 시적 발화를 선보였다. 모두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시적 수행이 아닐 수가 없다. 이들 가운데 한 편을 선택하는 일은 차라리 고통에 가까운 과업. 이 어쩔 수 없는 역할을 위하여 걸러낸 시편은 김미선의 ‘수풀떠들썩팔랑나비’ 외 3편, 박봉철의 ‘만개꽃’ 외 2편, 이도화의 ‘무심코’ 외 2편, 김수현의 ‘무한동화’ 외 2편, 이상록의 ‘추억의 극장’ 외 3편 등이었다. 참신한 감각과 포착, 재치 있는 사변, 환상의 표출, 내면의 환기 등을 그에 어울리는 시적 언어로 건져낸 시편이 적지 않았다. 이 정도면 다들 어디 내어놓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에 우리는 우선 동의하였다. 하지만 단지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사물과 삶을 지각하고 이를 표현하는 언어의 구체적이고 생동하는 발화의 양상에 더 주목하기로 했다. 이리하여 이상록의 시편들을 남겼고 그 가운데 ‘극장의 추억’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극장의 추억’은 흑백영화처럼 낯선 추억을 지금 이곳으로 불러낸 작품이다. 어쩌면 서정의 전통적인 방식에 의존하고 있어 다소 낡은 느낌조차 없지 않다. 그러함에도 구체적인 시어와 비유를 통하여 기억 저편의 사물을 감응하고 포획하는 솜씨가 뛰어났다. 자기만의 고유한 리듬을 획득한 점도 높이 살 수 있는 대목이다. 그만큼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삶의 구체에 육박하려는 태도의 성실함이 뚜렷하다. 당선을 축하하며 이를 계기로 정진하기를 기대한다.

 

심사위원 구모룡 문학평론가, 성선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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