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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024] 벽/추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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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90회 작성일 2024-09-26 22:04:10 댓글 0

본문

벽/추성은

​ 죽은 새
 그 옆에 떨어진 것이 깃털인 줄 알고 잡아본다
 알고 보면 컵이지

 깨진 컵
 이런 일은 종종 있다

 새를 파는 이들은 새의 발목을 묶어둔다

 날지 않으면 새라고 할 수 없지만 사람들은 모르는 척 새를 산다고, 연인은 말한다
 나는 그냥 대답하는 대신 옥수수를 알알로 떼어내서 길에 던져두었다
 뼈를 던지는 것처럼

 새가 옥수수를 쪼아 먹는다

 몽골이나 오스만 위구르족 어디에서는 시체를 절벽에 던져둔다고 한다
 바람으로 영원으로 깃털로
 돌아가라고

 애완 새는
 컵 아니면 격자 창문과 백지 청진기 천장
 차라리 그런 것들에 가깝다

 카페에서는 모르는 나라의 음악이 나오고 있다 언뜻 한국어와 비슷한 것 같지만 아마 표기는 튀르크어와 가까운 음악이고
 아마 컵 아니면 격자 창문과 백지 청진기 천장이라는 제목일 것이고

 새장으로 돌아가라고……
 아마 그런 의미겠지

 연인은 나 죽으면 새 모이로 던져주라고 한다
 나는 알이 다 벗겨진 옥수수를 손으로 쥔다

 쥐다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컵은 옥수수가 아니라는 것

 노래도 아니고
 격자 창문과 백지 청진기도 아니고

 진화한 새라는 것
 위구르족의 시체라는 사실도

 새의 진화는 컵의 형태와 비슷할 것이다
 그리고 끝에는 사람이 잡기 쉬운 모습이 되겠지
 손잡이도 달리고 언제든 팔 수 있고 쥘 수도 있게

 새는 토마토도 아니고 돌도 아니기 때문에 조용히 죽어갈 것이다*

 카페에서 노래가 흘러나온다
 그건 어디서 들어본 노래 같고 나는 창가에 기대서 바깥을 본다

 곧 창문에 새가 부딪칠 것이다
 깨질 것이다


[심사평]

감각·사유·언어를 오가며 빚어낸 ‘미래의 시인’

시는 긴장이고 충돌이다. 도전이고 모험이다. 새로운 시는 안전이나 완전과는 멀리 있다. 뛰어난 시는 지금-여기에서 저기-너머를 꿈꾸게 한다. 신인에게 기대하는 시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본심에 오른 열두 분의 작품 중 세 분의 작품을 대상으로 논의가 집중되었다. ‘졸업’ 외 2편은 거침없이 활달하다. 젊은 세대의 구어적 말맛과 비약적 대화를 극대화하여 시적 긴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고 있다. 그러나 그 경쾌함이 겨냥하는 것이 불분명할 때가 잦아 맥이 풀리기도 한다.

‘무인 가게’ 외 5편은 절제된 안정감이 돋보였다. 농(濃)과 담(淡)을, 완(婉)과 곡(曲)을 살려 시를 의미화하고 전경화하는 재능은 시인으로서 큰 자산이다. 시대적 징후를 잘 포착한 「무인 가게」는 당선작으로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단지 다른 시편들에서 보여준 설명적 부분을 덜어내고 특유의 응집력으로 시적 개성을 확보하기를 권한다.


추성은 씨를 새로운 시인으로 추천한다. 감각, 사유, 언어라는 시의 세 꼭짓점을 오가며 빚어낸 그의 시편들은 읽는 사람을 충분히 매료시키며 시의 안쪽에 오래 머물게 한다. 당선작 ‘벽’은 녹록하지 않은 신예의 탄생을 예고하는 수일(秀逸)한 작품이다. 버드 스트라이크 혹은 조류 충돌의 새에게 사람 사는 곳이란 온통 부딪힐 수밖에 없는, 차단된, 차가운 벽이다. 그러니 ‘새’의 선택지는 진화하거나 깨져 죽거나, ‘창’ 안에서 ‘옥수수’를 받아먹으며 길들거나 창의 ‘바깥’으로 넘어서거나, 숱한 ‘새 아닌 새’가 되거나 ‘진짜 새’가 되거나일 것이다. 비단 새뿐이겠는가. 이 시가 반문명과 비인간을 지향하는 시로 읽히는 대목이다. 미래의 시인으로서 우리 시의 지평을 새롭게 열어가길 기대한다.

정끝별 · 문태준 시인


[당선 소감]

“넌 시인의 이름을 가졌어” 그 한마디가 나를 지켰다

선생님은 나에게 시인의 이름을 가졌다고 했다. 그 기억은 각별하다. 마치 미래를 알고 있던 것 같지. 그것은 일종의 예언이기도 했으나, 시를 쓰는 나를 불안으로부터 지켜주는 말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 시인이 된 내가 있다. 이게 나의 대답이에요. 그동안 나는 매번 다른 이름이 되어서 다른 시를 썼고, 그 사이에 선생님은 이름을 바꾸었다. 나는 한 번도 선생님의 이름을 불러본 적 없는 것 같다.

아주 희박한 관성이 나를 움직인다고 느낀다. 21세기에 시를 쓴다는 것. 사랑 없는 세계에서도 아직도 시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 어쩌면 현실을 호도하고 싶어서 선택한 게 시일지도 모르지. 그러나 믿고 싶기도 하다. 세계가 돌아가는 논리. 나의 관성. 그건 가장 가까이 있는 거라고. 오늘 저녁으로 뭘 먹을지. 애호박을 살지, 상추를 살지. 그 정도에 그치는 거야. 나의 시는 멀지 않은 징조가 좋겠다. 그건 모두의 이름 같은 거다. 나를 지켜준 것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나의 이름이었으니까. 당선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기쁘고도 충만하다. 이제 나는 저녁에 뭘 먹을지 고민해야지.

대학 강단에서는 법을 가르치지만, 나에게는 법 대신 사랑을 가르쳐준 아빠. 그리고 나를 믿어주던 우리 엄마. 오빠. 모든 가족. 전화 주셔서 고마워요. 항상 내 옆자리에 나란히 앉아 주는 윤채. 또 금지야, 너와 함께 뜨던 뜨개실이 지금의 나를 완성한 것 같다. 수연, 시현. 언제나 내 고향이 되어주는 친구들. 그리고 승현, 우리, 서윤. 지금 우리 모두 다른 걸 하고 있지만, 우리의 마음은 영원히 문연자의 새벽에 남아 있어. 너희가 있어 글과 함께한 기억은 기쁘고도 애틋해. 기쁜 소식은 가장 먼저 알리고 싶은 소중한 서인, 선민, 정우. 나에게 시인의 이름을 붙여주었던 박정원 선생님. 그리고 이승하 선생님, 김근 선생님, 이수명 선생님, 새로운 길을 열어주신 심사위원께도 감사드립니다. 또, 이곳에 다 담지 못한 나의 소중한 이름들에게. 지키고 싶은 마음을 가득 담아 보낸다. 나는 계속 쓸게요.

추성은 시인
1999년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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