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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2024] take/김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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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264회 작성일 2024-09-26 22:30:2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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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ke/김유수

 쓰레기를 줍는다
 나는 쓰레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나가는 그것이 나를 쓰레기라 불렀다
 쓰레기를 입고 거리를 활보했다

 추운 거리를 그것이 배회하고 있었다 지나가는 그것의 입 속은 차갑다 지나가는 그것의 입술은 아름다웠다 지나가는 그것의 코트가 차갑다

 쓰레기와의 동일시는 어떻게 줍는 것일까
 너는 왜 나처럼 쓰레기를 줍지 않을까

 어떤 부부가 예쁜 쓰레기를 주워 간다 어떤 직장인이 따분한 쓰레기를 주워 간다 어떤 시인이 터무니없는 쓰레기를 주워 간다 그러한 쓰레기의 용도는 내가 입을 수 없는 옷이었다

 지나가는 그것이 코를 틀어막고 간다 지나가는 그것이 눈을 질끈 감고 간다 지나가는 그것이 옷을 건네주고 간다 지나가는 그것을 코트로 덮어버렸다

 지나가는 그것이 무덤, 이라고 말한다 지나가는 그것이 나의 자리를 탐내고 있다 나는 자리나 잡자고 이 거리의 쏟아짐을 목격하는 자가 아니다 이 거리의 행려는 더더욱 아니었다

 행려는 서울역 앞에서 담배꽁초를 줍고 있다
 담배꽁초에 나의 시간을 투영하고 있다

​ 그것이 서울역으로 타들어 가고 있었다
 서울역의 시계가 서울역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시 심사평]

"세대의 물음, 시대의 울림으로 다가와"

전부 그런 것은 아니나 많은 신춘문예 당선 시에 적용 가능한 불문율이 있다. 지나치게 길지 않아야 한다는 것, 욕이나 비속어를 쓰지 말아야 한다는 것, 불량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등이다. 우리가 김유수의 'take' 외 4편에 주목하게 된 것은 바로 이러한 불문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김유수의 시들은 길고, 욕이 나오고, 삐딱했다. 이른바 '신춘문예용' 시와는 거리가 있었다. 원고를 옆으로 미뤄 뒀다가 앞으로 당겨와 읽기를 반복했다. 정공법으로 튼튼히 지어 올렸으나 창문 하나 열어놓지 않은 콘크리트 건물처럼 갑갑한 시들 사이에서 김유수의 시는 시원했다. 펄럭였다. 종횡무진으로 움직였다. 궁금하게 했다.

마음과 생활이 바닥나서 남의 집 담장이 누울 자리로 보이는 일상의 일대를, 죽음이라는 막연한 일엔 쏟을 힘조차 없으면서도 친구가 필요하다고 중얼거리는 장례의 한복판을, 시간의 타들어 감을, 실험용 쥐가 머물던 투명한 상자와 같은 기억을 통과해 마침내 한 번도 이겨본 적 없는 결론의 발단에 도달하도록 짜인 김유수의 ‘몽타주’는 힘 있고 개성적이었다.

당선작인 'take'는 '그것'이라는 대명사의 활용만으로도 한 편의 시를 넓게 확장하고 있었다. 그것의 자리에 대신 삽입할 수 있는 '그것들'을 생각할수록 "너는 왜 나처럼 쓰레기를 줍지 않는 걸까"라는 세대의 물음이 시대의 울림으로 다가왔다.

김유수의 시와 함께 마지막까지 거론된 이영서, 최기현의 시들에 관해서도 덧붙인다. 두 분의 시 역시 각자의 개성으로 고유했다. 올해가 아니었더라면, 우리가 아니었더라면, 어떤 지면에서든 곧 만날 수 있으리라 믿음을 주는 시들이었다. 이영서의 시는 담담했다. 진술과 묘사를 차곡차곡 쌓아 올리며 인상적인 서사를 구축할 줄 알았다. 여름-새-활주로-아스팔트-옥수수-아이들로 스멀스멀 전개되는 최기현의 표제작은 팽팽한 긴장감이 매력적이었다. 시가 뉘앙스만으로도 사건의 전모를 드러낸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점이 믿음직했다. 보통 마지막까지 경합하다 낙선하게 된 작품들에는 아쉬운 소리가 따라붙기 마련이지만 적지 않았다. 다만 이번에 우리는 '시의 홀가분함'에 한 발짝 더 다가서기로 했다는 것을 밝힌다.

더 많은 독자가 김유수의 시들을 만날 수 있게 되리라는 기대에 기쁨을 느낀다. 어느 지면에선가 김유수의 '담장과 바닥'을, '친구 없는 삶'을, '쥐 소탕 작전'을, '결론이 구려서'를 만나게 된다면 우정 어린 마음으로 읽어주시길 바란다. 신춘문예의 불문율로 시작했으니, 다시 그것과 관련된 말로 끝맺으려 한다. 시인은 "자리나 잡자고 이 거리의 쏟아짐을 목격하는 자가 아니다."

심사위원 김현(대표 집필) 박상수 이수명 시인

[시 당선 소감]
"덫이 날 빠뜨리는 중이라 해도 기쁜 마음으로 입장하겠다"

벽 앞에 서 있을 때가 많다. 뻔한 비유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겠다. 벽 앞에 앉아 있을 때가 많다. 시를 쓸 때 그랬고 아닐 때도 그랬다. 약력에 쓸 것을 남기지 못한 나의 20대는 막다른 길을 거듭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길을 가로막는 벽 앞에 설 때마다 나의 힘은 항상 부족했더랬다. 이를테면 등단과 미등단 사이의 벽이 그랬다. 그럼 나는 지금 힘을 키워 벽 하나를 뛰어넘은 걸까? 정말 기쁘지만 그렇지 않다. 죄송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감사해도 모자랄 판에 무슨 말을 하나 싶다. 배부른 소리 말라고 혼내실 것만 같다. 하지만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 여전히 벽이 있겠다. 오늘 밤도 벽 앞에 앉아 있겠다.

무너뜨릴 수 없는 벽을 가만히 응시하는 것. 어쩌면 시를 쓸 때마다 그러한 실패의 확인과 응시를 반복할 뿐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무력감을 앞으로도 이겨내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괜찮을까? 스스로 질문한다. 그리고 변변찮은 대답을 내놓는다. 오늘 밤도 벽 앞에 앉아 있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일이 없겠다.

백석의 시 '흰 바람벽이 있어'를 꺼내 읽겠다. 거기에 나의 길이 적혀 있겠다. 벽 너머에는 네가 있겠다. 그런 믿음으로 벽을 응시하겠다.

네가 있어 감사하다는 말이 영원히 부족하겠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 너라고 불러본다. 금은돌 시인과 김승일 시인. 너라고 불러본다. 심사위원 선생님들을 너라고 불러본다. 네가 있어 내가 있다는 것을 자주 상기하는 내가 되겠다. 하지만 내가 없는 곳에 네가 있음을 볼 줄 아는 내가 되겠다.

너는 지금 나를 좋은 곳으로 데려가는 중이겠지? 하지만 때로는 너를 덫이라 부르고 싶기도 하겠다. 혹여나 덫이 나를 빠트리는 중이라 해도, 기쁜 마음으로 입장하겠다.

김유수 시인
1998년 경기 안성 출생
양업고등학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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